Alexander!
알렉산더가 트로이와 비교될 수 있는가? 파렐과 피트가 많은 점에서 유사점 - 치마를 입고 뛰어다닌던지, 사랑이야기라던지, 성적정체성이라던지 - 을 보이고 있지만, 물론 그 답은 NO이다. 피터슨의 Troy는 헐리우드가 만들어낸 악몽이었다. 비록 Troy 자체가 역사가 아니라 신화를 재구성한 것일지라도 그가 역사적 고증은 커녕 일리아드를 읽어보려는 시도라도 했는지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피터슨의 카메라는 치마를 입고 뛰어다니는 피트와 반쯤 벗은 그의 몸매를 쫒아다니는데 혈안이 되어있을뿐 아킬레스라는 인물에 대한 고찰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는 피트를 이용해 호메르스의 epic을 싸구려 헐리우드 사랑영화로 전락시켜 버렸다. 따라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면치 못하는 트로이, 혹은 트로이의 영웅 브래드 피트를 알렉산더, 또는 알렉산더의 영웅 콜린 파렐과 비교하는 것은 그다지 옳지 못하다. 뿐만 아니라, 비록 많은 제작비와 긴 시간을 쏟아부은 것에 비해 대다수의 관객에게 만족을 주지는 못하고 있지만, 스톤이 피터슨의 실수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지 않다는데, 알렉산더를 볼 가치가 충분히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올리버 스톤의 알렉산더는 알렉산더 대왕의 독재자로서 그리고 영웅으로서 혹은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를 그려내고 있다. 알렉산더는 절대권력에 대한 역사적인 고찰이며, 그 권력이 영원할 수 없음을 그리고 절대적 영웅도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아귀레, 신의 분노”의 아귀레가 뿜어내는 독선과 광기처럼 파렐을 통해 - 물론 그 비교에는 무리가 따르겠지만 - 알렉산더의 절대 권력자로서의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행위들이 마침내 광기로 변하고, 다시 힘없는 인간으로서 권력이 쇠퇴되어 가는 과정이 스톤의 카메라 속에 잘 포착되어 있다.
그러나 한가지 씁쓸한 것은 시기상으로 타이밍이 제대로 맞지 않아서인지, 이러한 권력의 흥망성쇠에 멍청한 전쟁광 부시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비록 감독의 의도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나, 특히 알렉산더의 첫 전투신이 아랍정벌(?)에 나선 부시의 모습과 다소 일치하는 것은 상당히 불쾌한 일이었다. 뿐만아니라 여전히 감독이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고 알렉산더가 역사적 고증에서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아시아가 미개하고 야만적으로 매도되는 것과 아시아의 해방을 명분으로 한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은 이 영화의 개봉이 시기적으로 많은 한계점을 갖고 출발했음을 보여준다. 알렉산더시대부터 - 아마도 그 이전부터 - 미국의 패권이 지배하는 현재까지 아시아 국가들의 역사가 억압의 역사로 내몰리는 것과 시대의 영웅 - 물론 서구에서 온 - 이 해방시켜주기만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아시아의 묘사는 여전히 서구중심의 사고가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물론 영화내에서 알렉산더가 이러한 것들을 일부 부정하기는 하지만.
알렉산더에 대한 반응이 혹평과 호평으로 양분되는 까닭은 이것이 헐리우드 블록버스터급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절대 아니다라는데 있다. 따라서 알렉산더를 트로이나 혹은 글레디에이터와 비교해서는 안된다. 이미 헐리우드에 길들여진 관객이나 비평가들에게 알렉산더는 제작비만 날려버린 졸작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마초냄새 풀풀나는 트로이나 혹은 글레디에이터에 주는 억지스러운 감동은 광기에 사로잡힌 그러나 너무나 나약한 알렉산더의 그것과는 절대로 비교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