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Playground of Their Own - kotesol
한국의 영어교육의 미래가 암담한 이유를 바로 이 학회 (KOTESOL) 참관을 통해서 확실하게 알 수가 있었다. 그렇게 교수들이 KOTESOL에 참석하려 하지 않았던 이유와 심지어 노골적으로 학회를 싫어했던 이유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강의실은 한국 영어교육의 미래를 책임질 일련의 집단 - 외국인 영어강사들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분명 영어강사들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 으로 넘쳐났지만, KOTESOL은 외국인 강사들의 학회 참가목적이 그들의 커뮤니티 결속강화라는 것과 자신들의 영어교육에 대한 무지함을 국제학술대회를 통해서 자인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 말고는 특별한 것은 전혀 없었다. 뿐만 아니라, 학회참가를 위해서 제주도에서까지 상경한 것을 미루어 짐작하면, 국내 거주하는 외국인 강사들의 학회에 대한 열정은 분명 대단함에 틀림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전문적인 혹은 학술적인 지식을 갖고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지에 대해서 세번의 presentation에 참여하는 동안에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게다가 이전부터의 기우 - 학회에서 특별히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없을 것이라는 - 는 발표자들의 성의없음과 3번이나 개최한 주최측의 상업적인 목적에 의해서 불식(拂拭)되지 않았다.
분명 plenary speech에서 Amy B. M. Tsui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의 영어교육과 관련한 정책과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다른 presentations에서는 그녀가 제시했던 문제점들에 대한 충분한 논의는 전혀 이루어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적어도 내가 관람한 presentation에서는) 오히려 지금까지 자신들이 해왔던 진부하고 틀에박힌 methodology가 여전히 유효함을 한번 더 확실하게 해주는 계기만 마련해 주었다. 교육정책이 불합리하고 모순투성이라고 조롱하기에 앞서 교육정책에 부합할 수 있는 적절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우선 되어져야 한다. KOTESOL conference 내내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것은 진정으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국가들의 영어교육의 미래를 고민하는 외국인 강사들의 모습을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아시아 시장에서 그들이 지독하리만큼 악착같이 살아남으려 한다는 인상만 각인시켜주었다.
결국 한국 영어교육의 미래는 한국인 정책가, 한국인 교사, 한국인 학생들의 몫이다. 스스로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없이는 영어교육을 통한 식민지화만이 남겨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