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reversible Ⅱ 0
보드카를 반병넘게 해치우고도 내가 아무렇지도 않은건, B와 한시간즈음을 대화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제대로 열 받았었기 때문일거다.
그 시절이 그립다. 아마도 되돌아 갈수가 없어서 더 그리울꺼야…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나는 아직도 아날로그인가봐… 그 속도에 맞출 수가 없어.
보드카를 반병넘게 해치우고도 내가 아무렇지도 않은건, B와 한시간즈음을 대화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제대로 열 받았었기 때문일거다.
그 시절이 그립다. 아마도 되돌아 갈수가 없어서 더 그리울꺼야…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나는 아직도 아날로그인가봐… 그 속도에 맞출 수가 없어.
내가 싫은 건 너가 아니라 바로 나야. 서로 모르는 사람이 만난다는게 인연이고, 그 인연은 결국 어려울 때 서로를 연결해 주는 작은 힘이 되고, 의지가 되는 법인데… 아마도 너와 나 사이엔 그런 것이 처음부터 없었는가 보다. 공허한 만남에서 무슨 인연을 찾고, 우정따위를 논할 수 있을까?
나를 다시 되돌아보게 한 우울한 어제였다.
연료를 다 소비해버리면 어떻게 될는지, 혹은 연료보충 불이 들어오고 얼마나 차가 더 나갈수 있을지 가끔씩 궁금했었다.
그 궁금증이 오늘 확실하게 풀렸다. 결국 휘발유가 바닥나면서, 차의 힘이 갑자기 빠져버리고 부르르 떨더니 지하통로 오르막길에서 그냥 서 버린다. 어쩔줄 몰라 한참을 난감해 하다가, 시동을 다시 걸고 지하통로를 완전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처음엔 열쇠를 차에 두고 내리더니, 서너주 전엔 불을 켜둔 채로 내려서 배터리를 방전시켰고, 오늘은 결국 연료부족으로 서비스를 불렀다. 세달 동안 벌써 세번째다. 정신차리자!
Lena가 지난 5월에 주었던 보드카를 비워버리고, 냉장고에 빈병을 집어 넣어버렸다. 한 모금 마셨지만 취기가 올라오지 않아 남은 보드카를 다 비워 버렸다. 몸에 강한 열기가 스며든다. 스피커에선 연신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이 흘러 나오고, 마음은 더욱 깊은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