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Everyday Matters' Category


the boy who was called Danny 0

스무살도 채 되기 전, 엉망진창인 나의 대학생활과는 다르게, 시간제로 근무를 하던 그곳에서 나는 매우 성실한 청년이었다. 새벽에 첫 버스를 타고 두세시간정도 근무하고, 9시에 학교로, 그리고 나서 여섯, 일곱시까지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가 밤 10시까지 근무하기를 아마도 거의 일년 넘게 한 것 같다. 매일 반복되고 지루한 생활이었지만, 그래도 그 곳은 나에게 유일한 일상으로부터의 도피처였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피곤해도 그곳에서 하루를 열심히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으로부터 15년전 Danny라고 불리우던 고민많은 대한민국 청년의 일상이었다.

삶은 수레바퀴와 같은가 보다. 다시는 그런 생활이 나에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는데, 지금 나의 생활은 15년전의 그것과 너무나 닮아있다. 나를 방황하고 고민하게 만들었던 원인들이야 물론 세월이 지나면서 많이 변했지만, 눈 앞에 놓여진 문제들을 해결하는 나의 방식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다는 것이 씁쓸할 따름이다. 제압하지 못하고, 자꾸 피하려 한다는 것. 결국 어느 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말이다. 지독하게 삶에 대해 부정적이며,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자세. 이것이 나의 형편없는 방어법이다.

지금 나는 15년의 세월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 Danny라고 불리웠던 청년으로 돌아와 있는 기분이다. 힘들어도 항상 입가에 머물던 미소는 비록 온데간데 없지만…

서른즈음에 … 0

또 하루 멀어져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속엔
무얼채워 살고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뛰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서른으로 산다는 것은 십대의 미열에서 발화한 스무살 청춘의 열정을 조금씩 식혀가면서, 흐르는 세월에 삶을 맡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서른살에 부딪히는 삶의 고민들은 스무살의 그것들과 확연히 다르다. 서른의 삶은 더욱 현실적이다. 새로운 것들에 대한 도전이나, 다가오는 사람들에 대한 설레임보다는 그 우연한 맞딱드림의 중압감에서 오는 공포가 더 크고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우연함에서 오는 두려움조차 내가 소유하고 있던 것들을 지켜내지 못하고 매일 그것들과 조금씩 이별하며 살아야 하는 고통에 의해서 잠식된다. 이것이 서른의 삶이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서른이 되면서 삶을 알아채기 시작한다. 그래서 삶은 더욱 힘들고 조심스러워진다. 이 오래된 노래가 가슴깊이 파고드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sleepless … 0

잠들기가 너무 힘들다. 해뜨기 몇시간 전, 참을 수 없는 고통에 2년전 쯤에 먹던 약들을 찾아냈고 결국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었다. 몸도 마음도 피곤한데, 잠드는 것이 너무 힘들다.

싸이를 다시 말한다 2

싸이. 많은 불만족스러운 요소들을 배제하고 생각해 보면, 싸이는 일종의 의사소통의 수단으로도 볼 수 있다. 여러 장애로 인해 야기된 현대인의 소통의 단절을 다시 연결해 줄 수 있게끔 하는 배출구가 될 여지도 있다는 말이다. 지난번에 이야기한 것처럼, 싸이가 온갖 잡담으로 가득찬 것임에는 분명하지만, 분명 이것을 통해서 서로에 대한 관심들이 표출될 수도 있다.

서로 소통한다는 것은 서로를 이해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바꾸어 말하자면,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음은 소통할 수 없음과 동일하다. 여기에 남긴 글들은 타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무의미한 동시에 글에 대한 가치 또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글을 남기고 댓글을 다는 행위는 양자간에 공유하고 있는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며, 그것은 또한 서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현대인을 둘러 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장벽들 사이에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작은 틈새를 열어 줄 수도 있을런지 모른다.

나의 방명록에 남겨진 글들중의 하나를 잠시 살펴 보자.

가: 쌤~~~ 하이~~~ ^^
나: 푸하하. 잘왔어.. 하이…

“가”의 글에 대한 “나”의 댓글은 지독하게 단순한 인사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한 언어들을 주고 받는 행위 역시 일상의 연속이다. 이것이 바로 삶이다. 삶이 항상 심각할 수도 없고, 일련의 언행에 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글 자체와 모든 글을 쓰는 행위에 매번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 또한 무리한 요구이다.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고 “가”가 부인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가”와 “나”의 사이의 생활에서의 유대감이나 관심이 웹상에서 여전히 연장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준다.

글쓰기는 때로는 심각할 수도 있고, 때로는 무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의미라는 것이 사람에 따라서나 처해진 상황에 따라서 매우 주관적이며 또한 유동적이다. 싸이를 온갖 잡담과 알수 없는 인간관계로 뒤엉켜진 매개체로 이해하기 이전에, 소통의 수단으로나 삶의 한 방편으로 바라보는 것도 그다지 불쾌한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싸이가 지나치게 상업화되어 가고 있다는 점만 배제하면 말이다.

허무, 착찹, 난감, 씁쓸, 젠장 0

새해 계획도 세울 틈도 없이 이틀이 쏜살같이 날아가 버렸다. 허무, 착찹, 난감, 씁쓸, 젠장.

첫째날: 하루종일 배를 움켜잡고 방안에서 이리저리 뒹굴거리며 하루를 보냈다. 신년계획이고 머고 땀흘리며 보낸 힘든 첫날이었다.

두번째날: 아침 10시 30분부터 시작된 번역은 저녁 8시 20분이 되어서야 끝낼수 있었다. (오늘은 사실 몇통오질 않은 건 사실이고 좀 뻥튀겨서 얘기하자면, 글구 이런데에다가는 좀 과장해서 얘기해야 재밌지 않은가?) 한 손으로 빗발치게 오는 전화받느라 입에선 연신 “네! XXXXXX입니다”를, 다른 한 손으로 번역하느라 하루종일 한글문서와 영문타자를 쉴세없이 눌러대면서 하루를 완전히 탕진했다. 사실 오늘 같은 날엔 아플 여유도 주질 않는다.

세번째날 새벽: 이제 좀 진정이 되는데… 지난 이틀을 너무 힘들게 그리고 피곤하게 보내서 졸음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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