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고 피곤함 0
사람냄새 묻어나는 그런 사람들과 부딪치고 싶습니다.
피곤함도 덜어주고, 내가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줄수 있는 그런 사람들과 잠시라도 부딪치고 싶습니다.
사람냄새 묻어나는 그런 사람들과 부딪치고 싶습니다.
피곤함도 덜어주고, 내가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줄수 있는 그런 사람들과 잠시라도 부딪치고 싶습니다.
시작은 항상 그 끝을 수반한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시작은 그 출발과 동시에 마지막을 향해 달리는 것이다. 그래서 출발점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더욱 아쉬워하고 그 처음을 더욱 그리워하는지도 모른다. 8월도, 찌는듯한 무더위도 이제 그 마지막에 다다랐다. 오늘 하루가 지나면 새로운 한달과 그리고 세번째 계절이 또 다시 시작될 것이다. 모든 일들이 혹은 새로운 만남들이 그 끝을 아쉬워 하기보다는 항상 새로운 시작을 기대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Open Water의 결말은 매우 충격적이다. 영화가 끝남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끝이야,” “끝난거야” 라고 웅성대는 이야기들은 우리가 얼마나 헐리우드 영화에 길들여져 있고, 이 영화의 상업적 성공을 위해서 미디어가 뿌려댄 광고속에 관객들이 깊이 빠져있었는지를 알 수가 있다. 영화가 끝나고 한참동안 도대체 이 영화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 무언지 알수가 없었다. 사실 지금도 Open Water가 무얼 의미하는지 알수 없다.
그러나 이 영화가 주는 공포는 스필버그가 작위적으로 만들어 낸 Jaws의 공포에 비하면 실로 엄청나다 (사실 Jaws가 나에게 주었던 공포는 내가 중학교를 마칠 때까지 jaws는 분명히 상어의 영어적 표현이라고 강력하게 믿었다는 것이다). 스필버그의 영화들이 주는 공포는 실제로 모든 어린이의 꿈과 환상을 한가지 유형으로 복제하고 번식시킨다는데 있다. 또 다른 공포감은 그의 영화들이 끊임없이 강요하는 가족애는 관객들에게 강력한 이데올로기로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의 filmography를 천천히 살펴보거나, 혹은 자신이 보았던 스필버그의 영화를 상기해보면 쉽사리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Open Water가 주는 공포는 영화가 끝난 후 살며시 엄습한다. 신중하지 못한 관객은 분명 실망하거나 결말에 허무해 할 수도 있다. 아주 가끔씩 보일듯 말듯 나타나는 상어의 등지느러미나, 붉게 물든 바닷물만이 관객을 공포스럽게 만들지만, 역시 이것은 다른 여타 공포영화나 서스펜스 영화들이 주는 그것과는 견줄수도 없을 만큼 미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Open Water가 주는 공포감은 난공불락의 대자연속에 버려진 인간의 나약함에 있다. 망망대해(茫茫大海) 속에서 고군분투(孤軍奮鬪)하고 살아남으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 인간 스스로의 실수로 인해 자연속에 묻혀질 수 밖에 없었던 부부의 모습속에서 우리는 두려움과 공포를 발견해야만 한다. 결국 Open Water는 스필버그식 꿈의 공장을 정면으로 엿먹이는 것이며, The Day After Tomorrow와 같은 헐리우드식 영웅주의 영화에 대한 조롱(嘲弄)의 표현임에 틀림없다.
인간이 어리석고 이기적인 이유는
배우지 못해서 아는 것이 없어서가 아니다.
자신의 허물을 알지 못한 채, 남을 탓하는데 더 큰 원인이 있다.
상대방의 모습을
내안에서 찾으려고 조금만 노력한다면,
함부로 화를 낼 수 없을 뿐더러
나의 우둔하고 이기적임에
부끄러워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를 얻고 또 다른 하나를 얻기를 바란다면,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물질(物質)을 만나는 것이고 …
하나를 얻기 위해서 둘을 잃는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이고 …
하나를 얻고 오직 그 하나에 충실(忠實)할 수 있다면,
바로 그땐 진정한 친구를 만났을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