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2005

비 (rain, 혹은 雨) 0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싫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 마음 같아서 싫다.
그래서 비는 쏟아 부어야 제 맛이다.
오늘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다 쏟아 붓다가
다시 부슬부슬 내리다 쏟아 붓기를 잇따라 한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볼 때마다,
저 빗줄기도 또한 곧 멎을 것이라는 걱정이 앞선다.

삶도 그렇다.
바로 내 눈 앞의 기쁨이나 슬픔을 즐기려 하기 보다는
이러한 감정 뒤에 슬며시 다가올 미래를 먼저 생각한다.
나의 현재를 즐기고 사랑하기에
나는 너무나 어리석고,
나에게 현실은 점점 저편 멀리로 사라져가는 것만 같다.
쓸데없는 생각들.
필요없는 고민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이상한 집착들.

비가 그치면,
이 비가 그치면,
이 비가 완전히 멎은 후,
작열하는 태양빛이 나의 머리를 뜨겁게 달구고 있을때면,
나는 다시 다가올 검은 비구름과 함께
강렬하게 낙하하는 빗방울을 그리워하고 있을까?
아니면, 나는 뜨거운 태양아래에서 산책하기를 바랄것인가?

선택은 나에게 달려 있다.
끊어버릴 수 있을 것인가?
반복되는 지겨운 일상(日常)의 피곤함을…

the trip from chuncheon to gyoungju #1 0

(내가 좋아하는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지금 내가 밟고 서 있는 곳을 떠나 본지도 꽤 오랜만이다. 학부시절, 친구들과 어렵게 돈을 모아 1박 혹은 2박 낯선 곳을 향해 움직일 때, 항상 마음은 설레였다. 그 곳이 낯설면 낯설수록, 내 마음이 더더욱 흥분되었던 기억이 든다. 이제 그때만큼의 가슴 설레임은 없지만, 나와 2박 3일의 짧은 이번 여정에 기꺼이 동참해 준 나의 친구들에게 감사한다. 여행이 나에게 소중한 이유는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곳에 첫발을 내딛는 것의 기쁨이라기 보다는 내가 좋아하고 믿고 또 나를 믿어주는 친구들과 함께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전을 출발해서 춘천을 거쳐 경주까지 아무런 계획없이 이동하는 동안, 불만없이 동행하고, 믿고 기꺼이 따라준 나의 친구들. Y, E, K! 모두 고맙다!

Excerpt from “Crowds and Power” by Elias Canetti 0

배설물에는 우리의 모든 살생의 죄과가 담겨있다. 그 배설물에 의해서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살생을 알게 된다. 그것은 우리를 몰아세운 모든 증거들을 응축시켜 놓은 집산물이다. 그것은 우리들이 매일 계속 해서 저지르는 죄과의 증거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냄새를 피우면서 하늘을 우러러 울부짖는 것이다. 놀라운 점은 우리들이 그 배설물과 우리 자신을 분리시키려고 얼마나 노력하는 지에 있다. 바로 그 목적만을 위해서 따로 설치한 특별한 방에서 우리는 배설물을 처치하는 것이다. 우리의 가장 내밀한 순간은 그곳에 들어있는 순간이다. 이때 우리들은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서 우리들의 배설물과 함께 있는 것이다.

분명이 우리들은 배설물을 부끄러워한다. 배설물은 소화작용이라는 권력 과정의 해묵은 징표이다. 그 과정은 어둠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기 대문에 배설물이 없다면 영원히 숨겨진 채 있을 것이다. (p. 199)

do i have still dreams? 1

직장일이라는 게 다 그런걸까? 아니면, 내가 일을 그렇게 하는 걸까? 점점 바보가 되는 듯한 느낌이다. 문득 문득 나를 바라볼때마다, 내가 내 직장동료들을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단순하고 반복되는 일에 신경을 쓰기가 싫어서 그렇다고 나 스스로에게 핑계를 대고 있지만…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에 조차도, 조금의 관심도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는 건, 내가 지나치게 게으르기 때문이다. 삶이란, 인생이란 다 똑같다는 생각이든다. 삶이 엿같은게 아니라, 내가 내 삶을 엿같이 만드는 것이다. 8층까지 날아 오른 잠자리는 무의미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것에 수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겠지만, 8층까지 비상한 잠자리와 수풀에서 빙빙 맴도는 잠자리의 차이는 없다. x-y-z 축의 물리적 좌표값만 틀린 것이다. 내가 8층의 잠자리가 되느냐 수풀속의 잠자리가 되는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의 현재 좌표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나는 나 자신에게 진실로 묻는다. 내가 꿈을 갖고 있었는지,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꿈을 갖고 있는지.

dragonflies soar up! 0

잠자리가 7층 높이까지 날려면, 얼마나 많은 날개짓과 얼마나 많은 힘을 필요로 할까? 한참을 컴퓨터와 씨름하다가, 7층 연구실 밖 테라스로 나간다. 7층 바로 밑에서 날개짓하면서 8층 높이로 날아오르는 것은 분명 잠자리다. 최근 몇년동안 잠자리를 본 기억도 없지만, 이렇게 높은 곳에서 그들을 본 적은 더더욱 없는 듯하다. 8층 높이에서 수평하게 날면서 멀어져 가고 있다. 근처에 그들이 쉴 수 있는 곳이라고는 내가 서있는 건물 하나뿐이다. 그러나 점점 그들이 하늘 속으로 사라져 가면서, 저들의 기력이 다했을때 하강은 어떠할까 문득 생각해본다. 아스팔트 바닥에 충돌하기 직전까지의 자유낙하(自由落下, free falling) - 그들이 바닥에 충돌하느냐 마느냐는 그들의 자유의지(自由意志)다, 적어도 그들은 최후의 순간에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 난간에 기대고 서있는 나에게 참을 수 없는 충동이 밀려온다. 아무래도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물질이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것 같다. 나는 난간을 밀치고, 다시 연구실 안으로 들어간다. K의 의자에 몸을 밀어 넣고서야, 안심이 된다. 잠자리들이 이 높이까지 올라온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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