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Luc이 제동을 걸었다. 중국 학생들과 베트남 학생들 사이의 미묘한 감정적 대립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Luc이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하기는 처음이다. Luc의 방문앞에는 내가 2주전쯤에 작성해 붙여놓은 벌점표가 그대로 붙여 있었다. 아마도 그동안 쌓였던 불만에 대한 무언의 투쟁일는지도 모른다.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묵시적인 종속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이거나, 혹은 여전히 한국땅에서도 억압받는 소수민족이라는 피해의식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베트남 학생들의 불만이 조금씩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베트남 학생들이 기숙사 점호에 대해서 아무런 불만이 없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면, 그 녀석 혼자만의 불만일는지는 모르지만 …
문제의 발단은 이렇다. 기숙사생들의 편의를 위해서 각자의 방문앞에 나와서 취침점호를 하는 것을 침대에 앉는 것으로 대체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Luc에 따르면, 이것은 침대에 앉아서 생활하는데 익숙한 중국인 학생들 중심의 기숙사 방침이라는 것이다. 침대는 오직 누워서 잠을 자는 곳으로 여기는 베트남 학생들의 문화는 무시한 채로 … 그러나 그의 주장을 단순히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베트남 학생의 억지가 아니라, 그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다음에 있다. Luc의 주장은 그들이 머무르고 있는 기숙사는 international students를 위한 곳이다. 비록 소수 의견을 모두 수렴해 줄 수는 없다할지라도, 정말 international students의 기숙사라면, 무조건 기숙사 지침에 따르라고 강요하기 보다는 최소한 다양한 의견을 들어 줄 준비는 하고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기숙사의 규칙을 엄수하고,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며, 서로의 편의를 위해서 잠깐의 불편함을 참아내라고 설득하려 했던 내가 할 말을 잃은 순간이었다.
컴퓨터 앞에 이 글을 쓰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Luc의 불만에 너무 무관심하게 대처하지 않았는가하는 생각이 든다. 신중치 못한 언어의 선택 (international students) 부터 비록 윽박지르듯이 강요는 안했지만 Luc과의 대화가 끝날때까지 그저 학교나 기숙사 방침만 따라 주기를 바라는 내가 어리석었다는 생각만 머리를 맴돈다.